평일 오전에 치킨 배달 앱을 켰다가 주문 폭주로 배달 시간이 두 배 넘게 뜨는 걸 보고 저도 잠깐 멈췄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체코전 당시 오전 배달 주문이 전주 같은 시간 대비 51.5% 증가했고, 치킨 단독으로만 875.8% 폭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조별리그 3위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그 열기가 단 사흘 만에 꺼졌습니다. 유통 업계가 기대했던 추가 경기 매출이 통째로 사라진 셈입니다.

조별리그 탈락까지,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은 체코전 역전승으로 출발이 좋았습니다. 멕시코전 석패 이후에도 32강 진출 확률은 87%로 높게 산정됐습니다. 여기서 진출 확률 87%란 특정 경우의 수 계산 모형이 산출한 추정치로, 쉽게 말해 "나머지 9개 경기에서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몇 개만 나오면 된다"는 시뮬레이션 값입니다. 공식 확정 수치가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결과는 달랐습니다. 에콰도르가 독일을 꺾는 이변이 터지면서 확률은 87%에서 54%로 뚝 떨어졌고, 이튿날 31%로 내려앉더니 결국 우즈베키스탄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역전패당하면서 탈락이 확정됐습니다. 한국이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의 일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소비자 심리 측면에서도 흥미로웠습니다. 희망이 유지되는 동안 치킨 주문이 폭증하고 광화문 인근 편의점이 평소 대비 2~4배 매출을 올리는 현상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소비는 경기 결과보다 '기대감'에 훨씬 빠르게 반응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편의점·치킨·주류가 받은 이벤트성 매출 충격
이번 월드컵에서 제가 주목한 소비 패턴은 심야 치맥이 아니라 평일 오전 편의점 소비였습니다. 경기 시간이 오전대에 몰리면서 김밥, 샌드위치, 즉석 치킨, 무알코올 맥주가 묶음으로 팔리는 이른바 '사무실 집관 소비'가 두드러졌습니다. 무알코올 맥주란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인 발효 음료로, 직장 내 음주 규정을 피하면서도 응원 분위기를 낼 수 있어 이번 대회에서 급격히 수요가 늘었습니다.
한국이 32강 문턱에서 짐을 싸게 되면서 업계가 직접 타격을 받는 항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추가 경기 당일 배달·편의점 이벤트성 매출 소멸
- 대표팀 경기 연계 프로모션(할인쿠폰, 응원 패키지 등) 조기 종료
- 거리응원 연계 광화문 상권 매출 급감
- 오비맥주 카스 등 공식 스폰서의 광고 노출 기회 축소
- 대표팀 유니폼 등 응원 굿즈 추가 수요 차단
여기서 스폰서십(Sponsorship)이란 기업이 특정 팀이나 대회와 공식 계약을 맺고 브랜드를 노출하는 마케팅 방식입니다. 경기가 계속될수록 노출 빈도가 쌓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조별리그 탈락은 계약 기간 대비 실질 노출 회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단, 저는 이걸 '소비 침체'로 연결하면 과장이라고 봅니다. 줄어드는 것은 대표팀 경기 시간에 집중되던 이벤트성 매출이지, 소비자가 치킨이나 맥주를 아예 끊는 게 아닙니다. 수요는 외식이나 다른 여가 지출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은 월드컵, 업계는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
실제로 몇몇 업체는 이미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탈락과 무관하게 16강 이후 빅매치가 줄줄이 남아 있고, 집관 수요 자체는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한국 경기가 없어도 결승 토너먼트에 가까워질수록 '월드컵 분위기'를 즐기려는 소비는 다시 올라옵니다.
업계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환 방향은 두 가지로 보입니다. 하나는 기존 할인 행사를 빅매치 일정에 맞춰 연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관 패키지'처럼 경기 시청과 묶인 상품 구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집관이란 집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소비 형태로, 거리응원과 달리 날씨나 이동 부담 없이 주문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배달·편의점 업계에는 안정적인 수요 채널이 됩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스포츠 이벤트 연계 소비는 직접 관람보다 집관·배달 형태에서 더 넓은 연령대에 걸쳐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또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집계한 치킨·맥주 카테고리 데이터를 보면, 스포츠 이벤트 비시즌 대비 월드컵 기간 배달 매출 상승폭은 평균 30~5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솔직히 이번 탈락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87%라는 숫자를 믿고 다음 경기를 기대했던 만큼, 확정되는 순간의 허탈함이 컸습니다. 하지만 유통 업계 입장에서 진짜 질문은 "왜 탈락했나"가 아니라 "남은 경기로 어떻게 분위기를 이어갈 것인가"입니다. 이벤트성 매출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면, 이번 탈락은 특수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특수를 다양화할 시점을 알려준 신호로 읽히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월드컵 빅매치와 집관 수요를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이번 대회 후반부의 진짜 승부처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