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기쁘기보다 먼저 계좌부터 열어봤습니다. 숫자는 분명 역대 최고인데, 제 종목들은 왜 이렇게 조용한 걸까요.

대형주 쏠림, 지수와 내 계좌 사이의 온도차
코스피 9000이라는 숫자만 보면 시장 전체가 들썩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많이 다릅니다. 6월 18일 기준 코스피 상장 종목 946개 가운데 상승 종목은 114개에 불과했고, 하락 종목은 790개에 달했습니다. 전체 종목의 83.5%가 하락한 날에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찍은 겁니다. 제가 직접 그날 시세판을 훑어봤는데, 초록불은 손에 꼽히고 빨간불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 참 기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른바 대형주 쏠림 현상입니다. 대형주 쏠림이란 시가총액 상위 소수 종목에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이들 종목만 오르고 나머지 종목은 소외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번 랠리의 주인공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감이 이 두 종목으로 자금을 빨아들였습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란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격과 기업 실적이 동반 상승하는 장기 호황 국면을 가리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장중 5% 넘게 오르며 266만원선을 돌파해 사상 최고가를 다시 썼습니다.
문제는 이 온기가 시장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근 한 달 기준으로 집계해도 상승 종목은 124개, 하락 종목은 796개였습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충분히 담지 않은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뉴스에서는 축제를 하는데 내 계좌만 소외된 것 같은 박탈감이 꽤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도 주변에서 "지수만 오르는 장 아니냐"는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닙니다.
주목해야 할 핵심 수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6월 18일 기준 하락 종목 비율: 전체 946개 중 790개 (83.5%)
- 이달 누적 기준 하락 종목: 638개 / 상승 종목: 277개
- 최근 한 달 기준 하락 종목: 796개 / 상승 종목: 124개
순환매 조짐, 이제 다른 업종도 기지개를 켜나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으로 볼 상황만은 아닙니다. 시장 안에서 조용히 변화가 감지되고 있거든요. 코스피가 8500선에서 9000선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쏠림 현상이 이전보다 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코스피가 28.5% 급등할 당시에는 월평균 상승 종목 수와 하락 종목 수의 편차가 -254개에 달했는데, 이달 들어서는 -26개로 크게 줄었다는 겁니다(출처: 키움증권).
이걸 증권가에서는 순환매라고 부릅니다. 순환매란 한 업종에 집중됐던 자금이 다른 업종으로 이동하면서 상승 흐름이 시장 전반으로 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난달에는 IT 하드웨어와 반도체 등 4개 업종만 코스피 수익률을 웃돌았지만, 이달 들어서는 소매·유통, 보험, 은행, 반도체를 포함해 11개 업종이 코스피 상승률을 상회하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순환매 신호가 뚜렷해지기 시작하면 시장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개념이 FOMO(포모) 심리입니다. FOMO란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좋은 기회를 혼자만 놓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뜻합니다. 소수 업종만 달릴 때는 이 심리 때문에 고점에서 무리하게 따라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는데, 순환매가 진행되면서 성과가 여러 업종으로 분산되면 이 불안감이 다소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저도 과거에 FOMO에 이끌려 고점 근처에서 반도체 관련주를 담았다가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이 부분은 더 민감하게 보게 됩니다.
체감 수익률, 반도체 실적이 다른 업종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실적 개선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대신증권은 올해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8800선에서 1만1500선으로 대폭 올려 잡았고, 글로벌 투자은행 노무라도 코스피 목표치를 1만에서 1만1000포인트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출처: 대신증권). 이 전망의 근거로 제시된 건 선행 EPS(주당순이익) 흐름입니다. 선행 EPS란 향후 실적을 기반으로 추정한 주당 이익으로, 이 수치가 올라간다는 건 기업 실적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2분기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 분기 대비 각각 56%, 3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전망한 2분기 반도체 가격 상승률은 58
75%에 달합니다. 솔직히 이 수치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도체 가격이 이 정도로 뛴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상향 조정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고, 그게 부품·소재·장비 업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 이달 들어 분기별·연간 영업이익 전망이 상향 조정된 업종이 17
19개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 체감 수익률이 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 전망이 현실이 되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체크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반도체 실적 개선이 장비·소재·부품 업종으로 실제로 퍼지는지 여부
- 순환매가 일시적인 흐름인지, 구조적인 성과 분산인지 추이 확인
- 선행 EPS 상향 조정이 이어지는 업종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지 여부
코스피 9000은 분명 역사적인 숫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지수가 얼마냐"가 아니라 "내가 가진 종목이 이 흐름 안에 있느냐"입니다. 저는 지금 당장 흥분하거나 좌절하기보다, 순환매 흐름이 다른 업종으로 실제로 퍼지는지를 차분히 확인해가며 포지션을 조율하는 게 맞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상승세가 소수 종목에 머물지 않고 시장 전반으로 번져야 비로소 모두에게 의미 있는 랠리가 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