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드라마 협업 도시락을 그냥 지나쳤던 사람입니다. 포장만 그럴싸하고 안에는 별게 없더라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생긴 편견이었죠. 그런데 '취사병 전설이 되다' 도시락은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손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군대리아, 맛다시 고추장, 경양식 돈까스라는 단어들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 느낌이었으니까요.

드라마 흥행이 편의점 냉장고까지 온 배경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공개 첫 주에 누적 디지털 콘텐츠 조회수 1억 2,000만 뷰를 돌파했고, 공개 이후 3주 연속 티빙 주간 유료 가입 기여자 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화제작이 아니라 플랫폼 실적을 움직이는 콘텐츠입니다.
이런 흥행 수치가 나올 때 식품업계가 움직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CJ제일제당이라는 국내 대형 식품 제조사(食品 製造社)가 중심에 섰습니다. 여기서 식품 제조사란 원재료 조달부터 가공, 유통까지 식품 공급망 전체를 관리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네 편의점이 동시에 협업 상품을 내놓은 것도 CJ제일제당이 공급 구조를 잡아줬기 때문에 가능한 그림이었을 겁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편의점 협업 상품은 보통 한두 군데에서 단독으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처럼 4사가 각기 다른 메뉴로 동시에 선보이는 건 꽤 드문 케이스입니다. 각 편의점이 내놓은 메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GS25: 취사병 정성을담은돈까스(5,100원), 취사병 산채불고기비빔밥(4,700원)
- CU: 취사병 옛날 햄버거(4,300원), 취사병 고추장 라구 파스타(5,500원)
- 세븐일레븐: 그럴싸한간장찜닭도시락(5,500원)
- 이마트24: 전설의꿀조합(5,500원)
가격대는 4,300원에서 5,500원 사이로 편의점 도시락 기준으로는 중상위권에 해당합니다. 4,000~5,000원대면 한 끼로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라는 반응이 많은데, 저도 그 범위 안에 있다고 봤습니다.
메뉴 구성과 IP 활용 방식, 뭐가 달랐나
이번 상품들이 단순한 도시락과 다른 점은 IP(지식재산권) 활용 방식에 있습니다. IP란 드라마, 웹툰, 캐릭터 같은 콘텐츠의 저작권과 상표권 등을 묶은 개념으로,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를 라이선싱(licensing)해서 패키지 디자인이나 메뉴 구성에 반영하는 형태로 씁니다. 여기서 라이선싱이란 IP 소유자로부터 사용 허락을 받고 그에 따른 로열티를 지불하는 계약 방식을 말합니다.
단순히 로고만 붙인 게 아니라 드라마 특정 회차의 장면을 메뉴 개발 원천으로 삼은 점이 달랐습니다. GS25의 돈까스 도시락은 2~3부에 등장한 장면을, 산채불고기비빔밥은 8부를 직접 참조했습니다. 군 급식에서 익숙한 맛다시 고추장을 넣어 드라마 분위기를 살리는 디테일도 챙겼고요.
CU의 옛날 햄버거는 군 복무 경험자라면 바로 알아챌 '군대리아'에서 착안했는데, 여기에 사과잼과 캐러멜라이즈드 양파를 더한 레시피가 꽤 흥미롭습니다. 고추장 라구 파스타는 토마토 기반의 라구 소스(ragù sauce)에 한국식 재료인 고추장을 접목한 퓨전 구성입니다. 여기서 라구 소스란 이탈리아식 육류와 채소를 오래 끓여 만든 걸쭉한 고기 소스를 말하는데, 여기에 고추장이 들어간다는 발상이 드라마에서 화제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마트24의 홍시떡볶이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메뉴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홍시 퓨레(purée)를 활용해 단맛을 낸 떡볶이라는 조합이 생소하면서도 드라마 팬이라면 한 번쯤 확인하고 싶을 만한 설정입니다. 여기서 퓨레란 과일이나 채소를 갈거나 체에 걸러 매끈하게 만든 소스 형태를 뜻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 IP 기반의 협업 상품은 팬덤 소비(fandom consumption)와 일반 소비자의 체험 구매를 동시에 유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팬덤 소비란 특정 콘텐츠의 팬이 관련 상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소비 패턴을 말하는데, 이번 상품들은 그 두 층을 동시에 공략한 셈입니다.
협업 간편식, 재구매로 이어지려면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협업 도시락은 첫 번째 구매까지는 브랜드 파워와 화제성이 끌어줍니다. 그런데 재구매율(再購買率)을 결정하는 건 전혀 다른 요소입니다. 여기서 재구매율이란 같은 상품을 소비자가 두 번 이상 사는 비율로, 간편식 시장에서 상품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4,300원짜리 햄버거가 패키지를 제거하고도 만족스러운지, 5,500원짜리 도시락의 용량이 한 끼 포만감을 충족하는지가 핵심입니다. 협업 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두 번 사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런 류의 협업 도시락은 첫 시도 때는 기대감이 크지만 맛이나 양에서 아쉬움이 한 군데만 있어도 '그냥 기억 속 드라마 음식으로 남겨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빠르게 나더라고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가공식품 소비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편의점 간편식 소비자의 재구매 결정 요인 중 맛과 가성비가 상위권을 차지하며, 브랜드 협업 요소는 초기 구매 유인에는 유효하지만 지속 구매로는 연결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번 편의점 4사의 협업 상품이 긍정적인 결과를 내려면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포장 안에 담긴 맛과 양이 가격을 정당화해야 합니다.
4사가 각각 다른 메뉴를 내놓은 전략은 비교 구매 심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영리합니다. 단순히 도시락 하나를 파는 게 아니라 "어느 편의점 버전이 더 나은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니까요. 그때 느낀 건, 이 방식이 단기 매출보다 브랜드 체험을 더 넓게 퍼뜨리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편의점 4사의 취사병 전설이 되다 협업 도시락은 콘텐츠 IP를 활용한 간편식 마케팅 중에서도 꽤 체계적인 시도입니다. 드라마를 봤든 안 봤든 군대리아나 경양식 돈까스라는 소재가 건드리는 감각이 있고, 4,300~5,500원이라는 가격대는 부담 없이 한 번 집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줍니다. 드라마를 보셨다면 본인이 인상 깊었던 회차 음식과 연결된 메뉴를 먼저 골라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화제성과 맛이 동시에 만족스럽다면 이번 협업은 꽤 오래 기억될 겁니다.